"국민연금 수탁책임실, 사실상 의사결정권 없다…재량 더 줘야"

입력 2022-11-10 10:04   수정 2022-11-10 10:32


“국민연금 수탁책임실은 주주권 행사를 담당하지만 이와 관련한 의사결정권이 사실상 없는 상태입니다. 수탁책임실 실무진에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문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사진?사법연수원 38기)는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는 것이 원칙인 의결권 행사와 달리 비공개대화 기업 선정에 대한 판단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100% 맡기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비공개 대화는 비합리적 배당, 과도한 임원 보수, 경영진의 위법 행위, 예상하지 못한 사건 발생 등으로 기업가치 훼손이 우려될 때 해당 기업의 이름을 외부에 밝히지 않은 채 이사회·경영진 면담과 서한 발송 등을 통해 개선책을 요구하는 조치다.

국민연금은 비공개대화 대상으로 정한 기업과 1년간의 소통을 벌인 뒤 지적사항이 개선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을 비공개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한다.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해당 기업의 이름을 공개하는 공개 중점관리 대상으로 삼는다. 공개 중점관리 기업이 된 해가 끝날 때까지 지적받은 내용이 그대로인 경우엔 주주제안 등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서기로 돼있다.

문 변호사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 주주권 행사팀장 출신으로 지난 3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라는 책을 발간해 자본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2019년부터 3년간 주주권 행사팀에서 책임운용역과 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올해 6월 임기 종료와 함께 국민연금을 떠났다. 국민연금 재직 당시 매년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국내기업 700여곳을 모니터링하고 100여개 회사와 비공개 대화를 했다.

문 변호사는 “수탁자책임실은 의사결정권은 없으면서 주주 관여활동보다 내부 감사와 국회 대응 등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다”며 “내가 잘해서 성과를 낼 여지는 작고 조직의 잘못이 내 징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실무자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어 “해외 연기금처럼 주주권 행사 결정과정에서 운용역 등 실무자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냈다. 국민연금이 지금까지 내부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한 것은 2019년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와 관련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때에는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요구한 주주제안이 유일하다. 문 변호사는 “한진칼을 상대로 한 주주제안으로 물꼬를 텄음에도 어떤 경우에 주주제안을 해야하는지, 누가 준비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보니 추후 여론 분위기에 따라 책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이런 이유로 한진칼 이후 적극적 주주권 행사 사례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수책위에 주주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넘기는 데 대해선 “그나마 정치·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라며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민연금은 현재 기금운용본부의 주주 대표소송 결정권을 수책위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계에선 “수책위 권한 확대가 기업 경영간섭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문 변호사는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대해 자체 판단해 찬성 표를 행사한 일이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권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이 드러났다”며 “이 사건 후 기금운용본부가 중대한 의결권 행사 결정을 내리기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어 “상당히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인 주주 대표소송의 경우엔 더더욱 부담이 크기 때문에 ‘외부 입김’이란 오해를 비교적 덜 받는 수책위의 토론을 거쳐 결정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했다.



문 변호사는 국민연금이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국민연금이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강조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 내놓은 책임투자 설명서 세부원칙에 ‘소수주주가 지배주주에 비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자본구조 변경, 분할?합병, 주식 분할?병합 등에 있어 주주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기재했다. 실제 의결권 행사에도 이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국민연금은 2020년 LG화학에 이어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 물적분할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문 변호사는 “상장사인 두 회사는 모두 배터리사업을 분할한 뒤 상장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중복 상장 문제로 인한 주가 하락이 예견됐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며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소수주주도 기업가치 훼손에 따른 피해를 볼 수 있어 반대 의견을 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연금이 무조건 기업의 물적분할에 반대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1월 말 포스코홀딩스의 철강사업(현 포스코) 물적분할 안건에 찬성한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국민연금 주주권행사팀은 당시 주총을 앞두고 포스코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만나 “물적분할해 설립한 포스코를 상장하면 포스코홀딩스 주가가 희석된다”며 “주주들이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물적분할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포스코홀딩스는 그 후 이사회를 열어 ‘물적분할한 자회사가 상장하고자 할 때는 모회사인 본사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정관을 만들었고 지난 3월 주총에서 물적분할 안건을 의결하는 데 성공했다.

문 변호사는 “포스코홀딩스 주주들이 포스코를 비롯한 자회사들의 상장 여부를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를 만든 셈”이라며 “포스코홀딩스는 이 같은 결정에 힘입어 주총에서 국민연금 등 주주들의 찬성표를 받아 철강사업 분할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 및 사업재편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국민연금 등의 주주 관여활동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변호사는 “대기업과 상장사들은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기관투자가들의 목소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채 해왔던대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며 “이 상태를 유지하면 기관들과의 인식 차가 더욱 커지고, 나중에 중대한 안건을 처리할 때 기관들의 반대로 부결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